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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낸시랭 광고, 네티즌을 우롱하고 있다

아침 지하철에서 무가지 신문 하단의 광고를 보고 순갈 놀랠 수밖에 없었다. 팝아티스트 낸시랭의 실종에 대한 광고 때문이다. 순간,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런 광고를 실었을까 생각이 들면서, TV에서 본 낸시의 어머니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병마와 싸우는 낸시의 어머니가 딸의 실종을 두고 악화되는 것은 아닌지.

물론 내가 낸시랭과 친하거나 그녀의 미술적 취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공인적 성격에 한 인간으로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 지면 광고는 광고라기 보다는 애타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오늘 인터넷 네이버는 낸시랭, 낸시랭 실종이 검색어 순위 1위를 달렸다. 발찍한 광고기획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렇지만, 순간 다른 생각도 들었다. 낸리랭의 예술적 취향, 즉 도발적인 측면을 생각한다면 잠시 잠적을 한 것은 아닐까, 혹시 프랑스 어느 마을에서 예술적 고뇌에 심취하고 있어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되었다. 이것이 광고적 퍼포먼스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혹시, 몰라 사무실에서 도착한 후 바로 검색을 하려다가 네이버의 배너 광고를 보면서 반신반의했다. 실종광고를 네이버 배너로?
역시나, 오전 내내 나는 광고쟁이들의 술수에 농간을 당했다.

그리고 또 한번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광고라고 해도 보는 사람들에게 화를 치밀게 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배너를 클릭해 들어가 보니, 다시 작업창으로 나올 출구를 만들어 놓지 않았다. 아무리 다른 메뉴를 살펴봐도 내 작업창으로 나올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내 컴퓨터를 강제로 재부팅할 수밖에 없었다.

욕이 나왔다. 내가 부팅하면서 들어간 전기요금과 내 노력을 보상받고 싶다. 이건 명백한 사기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올블러그에 낸시랭의 태그가 메인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계속된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광고는 성공한 것이다. 순식간에 검색어 순위 1위로 등극하고, 언론에서 기사화하고. 이 광고를 도모한 기획자는 성공을 했을지 모르지만, 해당 업체에 대한 '신뢰성'은 땅에 떨어졌을지 모른다.
이것을 가까 다큐멘터리 기법이라고 광고의 한 요소라고 하더라만, 이런 광고를 활용한 제품이 구매로 이어질 것인가는 의문이다.

이렇게 소비자를 기만하는 광고 추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최근 인터넷 광고에서 소비자를 우롱하는 예가 여러 가지 있다.
우선, 강제적 노출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광고를 억지로 볼 수 밖에 없게 하는 광고 형태이다. 이전의 배너 광고 형태에서는 그나마 해당 사이트의 방문자가 선택하여 광고를 클릭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최근, 배너광고의 효율성이 떨어진 것 때문인지, 컨텐츠를 가리는 플래쉬 광고가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이젠, 잘나가는 포털사이트나 인터넷 신문 사이트에선 없어서는 안될 광고 형태가 되었다. 그나마 'Closed'로 닫을 수 있게 하면 다행이다. 주요 정보란에 떡하니 붙여논 광고를 잠시나마 보고 나서 닫기를 눌러도 해당 사이트로 이동하게 하는 변종 수법으로 네티즌들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오늘과 같은 광고 형태는 사실, 네티즌을 속이는 형태이다. 마치 신문의 전면광고 지면을 이용해 자사를 광고한 내용이 신문 기사인양 취하는 광고이다. 게시판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새로운 정보가 있는 것 처럼 제목을 달아 놓고 들어가보면, 야동이나 광고 페이지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즉, 소위 낚였다고 하는 광고글들이다.

이제는 전형적인 광고 형태가 되었지만, 포털사이트의 스폰서 광고 등도 그러하다. 즉, 오버추어 광고 형태로 돈을 받고, 검색 순위를 조작하는 광고다. 이러한 광고 형태도 엄밀하게 말하면 정보 가치를 돈으로 조작하여 네티즌을 속이는 광고 술수라고 하겠다.

광고는 나의 상품이나 정보를 알리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광고의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단계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근 광고 형태는 이러한 과학적 노력도 부재하고, 오히려 도덕성 마저 넘어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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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불쾌감이 소비자의 머릿 속에 강한 인상을 주어 브랜딩 효과를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해당 제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전에 베네통의 광고가 어쩌면 이런 불쾌감을 주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종교에 대한 신성성을 넘나들거나, 생명에 대한 자연의 섭리를 깨뜨리고자 하는 광고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광고 제작자의 세계관이 들어가 있었다. 왜 그런광고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목적이 정확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적 사고 방식을 탈피하고자 한 이른바 '포스트 모던' 광고의 시작이었다.

불쾌감을 주어 관심과 자신에 대한 성찰을 주는 것도 예술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광고도 그런 속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방식에 있어서 무분별하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적으로 노출되거나 선택할 수 있는 기회 마저 제거하는 행위는 잘못된 광고 행위일 것이다.

낸시랭의 독특한 캐릭터와 접목하여 이번 광고가 예술적 행위로 치부될 수도 있는 헤프닝으로 끝날 수 있지만, 최근 인터넷 상의 광고적 형태가 가지는 무법성에 경고를 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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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메인 페이지의 상단 광고가 첫 기사를 막고 있다. 이 기사를 보기 위해서는 클릭을 해서 제거해야 한다. 아무리 언론이 자본없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매일같은 이런 불쾌함을 느껴야 하는 것을 참아야 하는지.